| | - 소재지 : 영춘면 상1리 - 년 대 : 조선시대 - 제공자 : 영춘면 하리 우계흥 - 체보자 : 영춘면 윤수경 | | | | | | 온달산성을 축조하고 산성에 무기로 쓸 큰돌과 자갈돌을 운반하기 위하여 생긴 돌무더기의 집합체로서 조산이라 하였고 이곳으로 강물이 본래 흘러갔다고 한다. 이곳을 막아서 물을 우회시키고 백호장터를 보호하고 고리들이 파헤쳐짐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곳의 조산더미에 물이 넘치면 영춘면 상·하리는 완전 침수된다고 한다.
이곳에 올라서서 보면 면소재지가 2∼3m 아래에 있음이 판명된다. 조산더미 위에 세워둔 입석이 배모양을 하고 있어 물로 힘차게 전진하는 기상을 의미하고 영춘소재지가 당시 수운교통의 중심지였기에 입석과 증언 역시 일치하고 조산더미를 중심으로 있었던 백호장터이다.
이것을 옛날 군청소재지를 중심으로 또 편리한 한강을 중심으로 물을 잘 막아주는 북벽의 자연조건을 바탕으로 소재지의 중심을 이루고 100호라는 가구가 살아서 백호장터이다. 예로부터 백호장터란 이야기만 있다가 72년 개답과정에서 많은 주춧돌이 발견되어 처음 북벽과 향교 조산담 부근에 강을 중심으로 최초의 영춘군청과 소재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고 옛 향교가 느티에 있었다는 점도 백호장터와도 연계성이 큰 것으로 풀이되며 소나기가 올 때면 처마 끝으로만 다녀도 비를 맞지 아니하던 커다란 촌락 장터였다고 하며, 해가 떠서 넘어갈 때까지 햇볕이 드는 따스한 곳에 백호장터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