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매우(梅隅), 도담(嶋潭), 신대(新垈)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하괴리라 해서 매포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12월 1일 매포면이 인구 2만 1천명으로 매포읍으로 승격되므로 매포읍에 속했다.
1970년대 성신양회 공장이 들어서면서 독신자 APT 및 사원 숙소가 옮겨와 번창하였으나,
1985년 충주댐 건설로 300여 세대 중 200세대가 이주하고 잔여세대도 1988년 공해보상과 1990년 수해로 이주하고 잔여세대가 삼봉 근처에 모여 산다.
특성
동쪽은 가곡면 덕천리, 서쪽은 적성면 기동리, 남쪽은 단양읍 별곡리, 북쪽은 매포읍 우덕리와 연접하고 도담리와는 한강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남한강이 가곡 덕천에서 흘러와 하괴의 도담삼봉을 휘감아 돌 때 매포천을 만난다.
충주댐 만수위 때는 남한강물이 매포천을 역류하여 우덕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실상 도담삼봉나루라 하지만 지형상 하괴리에 위치하며, 1960년대까지 강원도 오대산의 뗏목과 충청도, 경상도의 소백산 뗏목이 강바닥을 꽉 메웠고, 소금배가 이곳에 정박할 때는 객실 구하기가 힘들었다.
중앙선 철도와 옛 말길 국도와 옛 물길 수로가 모두 하괴리를 지났던 교통의 요지였다.
산천및지명유래
고두실 : 장쟁이 북쪽에 있는 마을로 고개가 길고 높은 데서 유래됨.
애기봉 : 매포리의 객산(솔미산)을 어머니 산으로 보고 이에 상대하여 일컬음.
이향정 : 1985년 충주댐 건설로 하괴리 주민 370가구 1,500여명이 고향을 떠날 때 성금 980만원을모아 건립한 4각 목조기와 정자이다. 추석과 설 명절 때 고향을 찾아오면 갈 곳이 없을 것이니 그때 이곳에서 만남의 장소로 삼자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김남포묘 : 현감을 지낸 청풍김씨 김남포의 묘. 방랑시인 김삿갓과의 일화가 시로 전하고 있다. 김남포가 옥순봉 근처에 낙향하여 살 때 김삿갓이 찾아오매 멍석을 깔고 죽 한 그릇을 대접하는데 이것이 너무 묽었다. 이에 김삿갓이 시를 지어 답하기를, “천하명산 옥순봉 천하괴한 김남포 사각송반 죽일기 천광운영 공배회“라 하였다.
무접산 : 무자산. 나비가 춤추는 형국. 전하는 얘기에, 하진나루의 사공이 도선 비결을 만든 도선도사가 지나갈 것을 알고 수년 째 적선을 베풀며 그를 기다렸다. 돈 있는 사람에게만 도선료를 받았으며, 짚신을 만들어 팔면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저 주기도 하였다. 어느 날 과연 도선도사가 배를 건너다 사공이 선행하는 것을 보고 묏자리를 잡아주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괴리에 마주보이는 나비 춤추는 형극이었다. 그런데 사공이 수나비 형극에 묘를 써서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석문(石門) : 단양팔경의 하나. 동양 최대의 석문으로 마고할미의 전설을 가지고 있음. 측백나무가 자생하여 장관을 이루며 하늘로 통하는 선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은주암(隱舟岩) : 隱舟岩. 석문 북쪽에 있는 바위. 안이 넓어서 배를 숨길 만함. 굴 벽 틈으로 햇빛이 새어 들어 물을 엷게 뿜은 것처럼 되어서 마치 짐승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함.
곡마을 : 공마을. 장쟁이 남쪽의 마을.
용초동굴 :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따뜻하며, 6.25때 마을 사람들이 피난했다 함.
댕대이고개 : 장쟁이에서 나루고개로 가는 꼬불꼬불한 고개
장쟁이굴 : 하괴천굴. 장쟁이에 있는 중앙선의 기차굴.
물방아거리 : 황새봉 동쪽 들판에 물레방아가 있었음.
배나무골 : 장쟁이 남쪽 골짜기로 돌배나무가 많이 있었다.
새터 : 고두실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
고두실고개 : 고두실에서 어의곡 소류지로 가는 고개.
송고지재 : 괴실에서 가곡면 여천리 못밭으로 가는 고개.
소금창고 : 도담삼봉 사당터에 옛날 기와집이 8채 있었는데 청풍김씨들이 관리하였다.
옹기골 : 청풍에서 좋은 흙을 배로 싣고 와서 옹기를 구어서 다시 서울로 갔다.
철다리교각 : 해방 전 소백산의 지하자원과 산림 수송 목적으로 일제가 철도 부설을 계획하다가 해방 후 도담에서 가곡 사평까지 부설됐으나 6·25사변으로 방치되었다. 1985년 충주댐 건설 시에 교각은 파괴되고 고수재 아래로 철도 잔재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