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리

연혁

  • 삼국시대에는 차례로 백제, 고구려, 신라의 영토였다.
  • 고려시대까지 영월에 속한 지역이었다.
  • 조선 정종 원년에 충청도로 이속되어 감무가 설치된 영춘현에 속한 마을이었다.
  •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색동(草色洞)과 좌송(坐松)을 병합하여 용진리라 하여 영춘면에 속하였다.

특성

  • 1625년경 창녕조씨와 강릉김씨가 개척하였고, 임진왜란 때 피난온 문화유씨가 1633년경부터 거주하여 3성이 마을을 이루었다.
  • 고종 32년(1895) 용진에 있던 동면 면사무소가 1910년 동대리로 옮겨갔다.
  • 나루가 있으므로 용나루, 용진(龍津)이라 하였다.

산천 및 지명유래

  • 부월산(浮月山) : 마을에 보름달이 뜨기 시작하는 산. 해발 306m.
  • 표주박산 : 산의 안쪽 모양이 물 떠먹는 긴 자루 모양임. 해발 308m.
  • 염산 : 404m. 용진의 주산.
    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나무를 베면 마을에 불이 나므로 예방을 위해 소금을 묻어 염산이
    라 함.
  • 수리봉 : 시리빙. 수리가 앉아 있는 형상. 용진 뒤편 초색 방향에 있는 봉.
  • 투구봉 : 용진리는 장군 출정 형극이며, 마을 뒤편 투구봉은 장군의 투구 형상으로 영월군 하
    동면각동리와 경계임.
  • 병두(秉斗) : 용진. 용나루. 한때 150호까지 살던 마을로 현재는 91호 거주. 군사가 진을 치는 형국.
    예부터 단양의 1병두 2느티 3덕천 또는 1병두 2덕천 3모실이라 하였으며, 각종 배의 종
    점이었기에 1병두라 함.
  • 용나루 : 용진 서쪽에 있는 나루터. 용이 올라갔다 함. 소금배가 드나들었으며 영월, 정선,
    평창,부석, 소천, 순흥에서 용진나루의 소금을 이용함.
  • 좌송 : 坐松. 원용진 동북쪽에 있는 마을. 예전에 앉은 소나무가 있어 마을 이름이 됨.
  • 아홉살이 고개 : 백아곡(白阿谷). 용진에서 상리로 가는 고개. 18세 계모와 9살 딸의 전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