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땅의 을아단현이었다.
- 통일신라 신문왕 때는 자춘현이었다.
- 고려시대에는 강원도 원주군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 충청도에 속하였다.
- 고종 32년(1895) 영춘군으로 승격되어 영춘군(永春郡)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눌태(訥台), 휴석(休石), 거석동(擧石洞)을 병합 상리라 하였다.
- 1971년에 상1리와 상2리로 분구되었다
특성
- 면소재지의 마을로 1971년에 상1리와 상2리로 분구되었다.
- 영춘읍내 위쪽이 되므로 윗말 또는 상동(上洞)이라 하였다.
- 상리는 관공서가 밀집하여 있고 상권의 중심지이다.
- 시골장터의 정겨움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산천 및 지명유래
- 한강 : 강원도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영춘을 관류한다.
- 영춘제방 : 1972년 수해 후 박정희 대통령 당시 축제함.
- 상리나루 : 상리 도선장. 상리에서 느티로 가는 나루. 단양-영월, 느티~영춘을 연결.
- 둔둘바위 : 상리나루 북쪽에 있는 바위. 전에 어느 장군이 들었다 놓았다 함. 거석동.
- 북벽교 : 연장245.4m, 폭8.5m. 공사기간‘90. 4. 10~’91. 9. 11. 동원건설 시공.
이 다리로 인하여 찻배가 없어짐.
- 조산담(조산데미) : 느티 남쪽, 강 건너 인공으로 모은 산. 상리 도선장 근처의 돌로 쌓은 표식,
이곳에 물이 들어오면 영춘은 완전히 폐허가 된다고 함. 조산담이 없을 때는 강물이 이곳으로 흘렀음.
- 갈매기 : 군관과 하리나루 사이의 마을. 하2리 1개 반 8호가 살고 있음. 갈마 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자리. 이곳은 강물이 앞뒤에 있어도 물이 부족함.
- 객사터(客舍터) : 현 영춘면사무소 자리. 영춘 관아의 객사가 있었음.
- 북벽 : 장터 동쪽에 있는 벼랑. 태수 이보상(李普詳)이 벼랑에‘북벽(北壁)’ 두 자를 크게 새기었음.
높이 수십 길, 넓이 500보 되는 벽이 강을 끼고 있는데, 봄가을에 배를 타고 절벽을 안고 돌면서 바라보는 경치는 선경임.
- 곡계굴(哭鷄窟) : 괴께굴. 상2리 동굴로 6.25당시 주민이 피난하였다가 폭격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곳.
폭격 이후 몇 년 동안 장마지면 굴에서 뼈가 나올 정도로 희생이 컸음.
매년 12월 12일에 18호가 집단으로 제사를 지냄.
- 반공이 : 반고이. 半空마을. 면소재지 전면 산꼭대기 마을로 어느 장군이 산이 험악하여 하늘을 보니 반공이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 반공이 고개는 사지원2리로 통하는 길목임.
- 윷판바위 : 옛날 온달장군이 윷을 놀았다고 하나 전시에 한가로이 윷을 놀 수 는 없었고 작전지도를 놓고 회의하던 곳. 윷점 자국이 있으며 군도가 바위 바로 앞으로 지나감.
- 세먹이 샘물 : 북벽 맞은편 강가에서 솟는 샘물. 지하수로 겨울에는 따뜻함. 간이상수도가 있기 전
상2리 주민들이 먹던 물.
- 억수목이 : 영춘 사람들이 비마루 쪽을 보면 소나기 올 때 뿌옇게 비가 억수로 많이 들어온다 해서 억수목이라 함.
휴석동에서 갈매기로 넘어가는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