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전국행정구역 조정으로 북일면과 북이면이 합병할 때 창말과 신매를 합해서 매포가 되었다.
1980년 12월 1일 매포면의 인구가 2만 1천명이 되자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8년 시멘트 분진으로 인한 이주와 1990년 9월 12일 충주댐 만수위 145m 초과담수로 인한 역류현상 으로 매포리가 완전 물에 잠김으로 인하여 매포 1 · 2 · 3리가 평동으로 이주하였다.
특성
평야는 적고 산이 많은 곳이며, 매포천이 안동에서 흘러내려 하괴로 흘러간다.
전형적인 석회암지대라 석회암이 풍부한 관계로 시멘트를 생산하여 중앙선 철도를 이용해 전국으로 운송하고 있다.
동쪽은 가곡면 여천리, 서쪽은 매포읍 평동리, 남쪽은 매포읍 하괴리, 북쪽은 매포읍 안동리이다.
도담역은 중앙선 철도 승하차 역으로 성신과 한일의 시멘트 수송역할을 하고 있다.
마산~중강진의 5번 국도가 지나다가 1996년도 노선변경으로 국도가 이설되었다.
시멘트 산업의 발전으로 인근의 농경지 모두가 공장 부지로 흡수되었으며 1990년 수해로 마을이 전폐되었다.
산천및지명유래
어리이재 : 해발 405m의 산 아래를 넘어서 덕천 쪽으로 가며, 영춘 · 가곡 사람들과 상인들이 통행하던 옛날 큰길이다.
자살고개 : 장터와 우덕 사이에 있는 고개로 전에 어떤 사람이 목을 메어 자살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철길이 나고 옛 도담 학교가 있어 고개로서의 개념이 없어졌다.
작살고개 : 단봉산은 명산인 금수산의 줄기에서 뻗어 내려와 매포읍 매포리 맥을 형성하는데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어 기러기봉 또는 안봉이라 한다. 날개 치는 기러기 형상의 단봉산을 두고 많은 인재가 날 것이라 하여 풍수가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압록강을 건너서 평양 · 서울을 거쳐 안동으로 향하던 중 단양 땅을 지날 때에 단봉산의 “기러기 날개 치는 형상”을 보고 군사의 행군을 멈추게 하고 관상감으로 하여금 기러기 날개 부분을 찾도록 명하여, 가지고 있던 작살을 기러기 날개 밑에 꽂아 지혈을 끊어서 나라의 큰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또한 후일에 누구라도 작살을 뽑지 못하도록 작살의 쇠만 꽂고 자루는 감추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이 공해 보상 · 수해피해 보상 등으로 모두 안동리로 이주하였으나 1990년도까지는 매포읍의 소재지로 마을이 컸다. 단풍모랭이와 도담초등학교가 있고 성신화학이 있어 번창하더니 이제는 수해의 흔적만이 남아있고 학교는 석회석신소재연구소로 탈바꿈했으며 또 성신양회 철길과 중앙선 철길이 나서 이미 맥은 끊겼으므로 매포의 생명을 다하여 읍이 안동으로 옮겨갔다고 지적하는 풍수가들도 있다. 작살고개도 없어지고 마을도 없어졌는데 작살이 없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솔미산 : 객산. 객지에서 온 사람은 돈 벌면 떠야한다 또는 손님같이 왔다가 빨리 떠야 한다는 데서 객산으로도 유래됨. 쇠곳이 많이 있었고 산봉우리에 물이 났었으나 시멘트 원석 채취로 물줄기가 없어졌다.
단풍산 : 丹楓山. 단풍모랭이. 새말 북쪽에 위치하며 단풍나무가 많았다.
마하모랭이 : 마하(馬下)모랭이. 매화모랭이. 단풍산을 걸어 내리지 않고 말을 타면 아무리 채찍을 가해도 움직이지 않음으로 다시 돌아가 걸었다 하여 마하모랭이라고 한다.
구마이들 : 구만사란 절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기왓장과 금부처가 들판에서 출토되었다.
애기봉 : 163m. 작지만 명산으로 묘를 쓰면 동네 개가 짖어서 쓸 수가 없었다.
연등골 : 옛날이 절이 있었으나 없어졌고 절의 옛 연못이 있었다.
남생이소 : 새말 동쪽의 소로 남생이가 많이 살았다.
매질포 : 매포의 옛 지명으로 한강의 3포 중 하나. 서울의 마포, 여주 · 이천의 이포, 단양의 매포를 삼포라 함. 소금배의 정박지이자 뗏목 뱃사공의 쉼터였다.
매포들 : 현재의 창말 쪽과 성신화학 자리의 논을 말함.
새말 : 신매. 새로이 조성된 마을로 장터 남쪽을 가리킨다.
아랫말 : 새말의 아래쪽 하괴의 자연 마을.
창말 : 옛날 군의 곡식 보관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말이라 함. 북일면 북이면 지역의 세금을 징수하여 수로로 운반하기 위해 설립 운영되던 창고이다.
매포느티나무 : 매포읍사무소 위치. 수령 300년, 둘레 5m, 수고 25m. 본래 성황당 옆에 성황 여신과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뾰족한 수나무를 심었던 것으로 매포의 번창을 기원하는 뜻.
마방터 : 옛날 경상도 사람들이 말을 매고서 주막에서 쉬어가기 위해 말의 먹이를 장만하던 지역.
매화낙지 : 옛날이야기에 매화낙지(梅花落地) 명당자리가 있다 하여 많은 풍수가들이 찾아왔으나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이 구담봉에 은거하면서 매포를 지날 때 갑자기 안개가 끼여 앞이 안보임에, “이곳에 필시 명당자리가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은 아직도 이런 성지를 볼 수 없구나“하고 반성하고 세옹밥을 지어 치성을 드리니 안개가 걷혔다 하고, 그 때 어룡지하(魚龍之下) 십수지내(十水之內) 란 말을 남겼는데, 풀이하면 매포천과 남한강이 합치는 곳에 깎아지른 암벽과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니 그 아래가 어룡지하요, 두 강물이 합쳐 물의 모양이 열십자와 같으니 십수지내다. 매화낙지 혈을 잡으면 금시 발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했고 또 일설은 3대가 걸인이 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