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늪실(楡谷), 면위실(免危谷), 가린여울(佳利灘), 가재골(可在洞)을 병합 하여 향산리라 해서 단양군 차의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31년 가곡면에 편입되었다.
특성
가린여울이 있었으나 소수력발전소로 인해 여울이 없어졌고 향산리 본마을에는 수령이 300년이 된 느릅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밭농사를 주로 짓는다.
남한강을 앞으로 굽어보는 향산리는 신라시대의 묵호자가 세웠다는 향산석탑이 있으며, 경치가 아름다워 여름철에는 많은 피서객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산천및지명유래
가린여울 : 4가구가 있으며 가린여울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도 가린여울이라 하였다.
가재골 : 가재동이라고도 하며 갈목재 밑에 있는 마을
갈목재 : 길목재 밑에 있는 마을
늪실(유곡: 谷또는 楡谷) : 향산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느릅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느릅나무 숲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느릅나무 유(楡)자를 써서 유곡동(楡谷洞)이라 함
대진목 : 대진목 밑에 있는 마을로 지금은 밭이 없어지고 묵어 버림.
대진항(大津項) : 대진목과 같은 이름이나 동리주민들은 대진항이란 말은 거의 모르고 있었음
동부골 : 가재골 동쪽에 있는 마을
며느실(면위곡:免危谷) : 늪실 동쪽 남한강에 연안에 있는 마을로 군간대교를 건너자마자 골짜기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면 있는 마을
자치골 : 가재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
장구매기 : 장군목 고개 위에 있는 마을. 원래는 장군목 마을에서 가래여울로 가는 고개를 말함
개미산 : 겸암산(謙庵山) 또는 경안산이라고도 하며 늪실 남쪽에 있는 산
갈미봉 : 향산 서쪽에 있는 산으로 갓모처럼 생겼다 하여 갈미봉이라 부르며 노갈봉이라고도 함
갈목재 : 동부골 동남쪽에 있는 고개로 가재골 위의 조그만 골짜기로 올라 보발리 성금으로 통하던 재말랑(고갯길 )
밤골 : 1970년대 밤나무를 많이 심어 새로 생긴 마을 뒷산의 이름
당재 : 면위실에서 가재골로 가는 재로 개미산 가기 전의 등성이
장군목 : 장군목 마을에서 가래여울로 가는 고개
대진목 : 향산리에서 갈목재로 가는 고개로 온달장군이 진을 쳤다고 전해 짐
가랫여울 : 면위실 동북쪽에 있는 여울로 주민들은 대체로 가랫여울이라 부르며 가리탄(佳利灘), 가린여울(灘項), 가래여울 등의 이명(異名)이 있고 가늘고 긴 여울이란 뜻이라함
장때여울 : 늪실 서쪽 앞에 있는 여울로 여울이 길어 장때여울이라 부름
사미여울 : 향산 서남쪽에 있는 여울
면위실논골 : 면위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논이 많아 논골이라 부른다.
백장못 : 늪실 동쪽에 있는 못으로 백정이 버들을 베러갔다가 이곳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늪실에서는 농사철에 비가 오지 않으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음
보발골 : 향산 남쪽에서 보발리로 가는 어귀에 있는 골짜기
사시래이골 : 늪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절골 : 늪실 서쪽에 있는 골짜기
조무골 : 늪실 동쪽 절골 반대편에 있는 골짜기
진금 : 가린여울 동북 쪽에 있는 골짜기
피바골 : 밤나무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피박골 또는 피바위골이라고도 한다. 전투에서 군사들이 흘린 피가 바위에 많이 묻어서 이런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향산논골 : 향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소구리언덕 : 장때여울 서쪽 150m 거리에 있는 여울
신여울 : 향산 서남쪽에 있는 여울로 물살이 세다는 의미로 신여울이라 부른다.
채소 : 늪실 북쪽 앞에 있는 소
진못 : 늪실 북쪽에 있는 늪
탑들 : 향산석탑 남쪽 보발골 입구
타들보 : 농업용수 공급면적이 2.1ha로 관리자는 김홍목 이었음
군간나루(軍看나루) : 향산리에서 영춘나루로 가는 길에 있는 나루. 이곳의 물이 달고 좋다고 하여 ‘단물내기’라고 부름
석보암(釋保庵) : 향산사 터에 있는 사찰
신선바위 : 면위실 서쪽 앞에 있는 바위
옷물바위 : 마을 앞에 있는 바위로 옻이 오르면 이곳에서 씻으면 낫는다고 함
유암사(留岩寺) : 경암산에 있는 사찰
향산사(香山寺터) : 향산리 471-1번지에 있는 절터. 신라 눌지왕 19년(435) 묵호자(墨呼子)가 부처님의 계시를 얻어 이곳에서 절을 짓고 향산사라 하였다고 함
향산석탑(香山石塔) : 향산사 터에 있는 석탑. 보물 제 405호 신라 눌지왕 19년(435)에 묵호자(墨呼子)라는 도사가 향을 구하러 이곳에 이르러 갑자기 이상한 꿈을 꾸고 이곳에 향산사(香山寺)를 짓고 수도하였다고 하며 그가 열반한 후 이 탑을 세우고 그 사리를 보관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