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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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하원곡의 지명유래
작성자 관리자
내용
 
  - 소재지 : 단양군 적성면 상·원곡리
- 체보자 : 문 상 오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임중에 있었던 일이다.

이황 선생이 누구인가?

설명이라고 하면 변설이 될 터이고 부연하고자 하면 사족이 될 터이니 그냥 당대의 대유학자요 문호라고 하자. 어디 당대에 뿐이랴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지금이야 이황 선생이 누군인지 떠르르 하지만 메스컴도 변변찮던 당시의 사정으로야 선생이 누구인지 뭇 백성이 알기야 했을 것인가. 하고보면 그 당시의 이황 선생이 가졌던 지명도 보다야 지금이 훨씬 더 유명할 것이라 생각하면 착각도 유분수일까?. 어쨌건 천석고황이 깊어 중앙관직을 마다하고 군수란 벼슬을 얻어 임지한 곳이 바로 단양이란 산좋고 물맑은 곳이었는데 가히 선경중의 선경이었더라. 이천으로 여주로 청풍을 지나 단양에 당도해 보니 입부터 딱 벌어지는지라 육방관속을 기찰할 제,

"허어 내 이적지 조선팔도 안돌아본 곳이 없어 다녀봤지만 이다지도 풍광 좋은 고을은 처음이니 그래 이곳의 민심은 어떠한고."

읊조린 이방 그 허리를 더욱 공손히 굽혀 말하기를...

"이곳 백성들의 마음 미쁘기 한량없어 송사 끊어진지 오래며 어여쁜 마음들이 하나 같아서 서로 돕고 돌보기를 친지같이 하는지라 칠년대한이 들어도 풍족한 곳이 바로 이곳인줄 아옵니다."

"장하시오 참으로 어여뿐 일이오 내 이런 고을의 수임으로 앉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상감마마의 홍은이라. 내일부터 상담의 어의를 선양하고 어려운 백성을 선무하기 위해 현장으로 임할 터인즉 그리 아뢰기 바라오."

지금으로 말하면 지방행정 수장의 초도순시 쯤에 해당될 것이나 대쪽은 갈라도 묵낫(사용하지 않아 쇠녹이 슨 낫)은 쓰지않는 성품인 이황 선생인지라

"관복(官僕)하나에 말 한 필이면 될 것이니 달리 딸릴 종사는 물리도록 하시오, 또한 치장하지 아니한 것을 순(純)하다고 다듬지 아니한 것을 박(朴)하다 하였으니 예로부터 치정자가 민심을 살핌에 이 순박함을 으뜸으로 여겼거든 기찰통지 따위의 우를 범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시오. 본관이 보고자 하는 바는 백성들의 민심이지 귀관들의 눈속임이 아님을 유념하시오"

하고 엄히 이르기를 잊지 않았다.

동헌을 나서면 남한강이다.

깊고 그윽하기를 이곳 백성의 민심만큼이나 유순한 그 남한강을 건너 금수산 자락자락을 돌은지도 벌써 며칠째 인지를 모른다. 사흘이 지난 것도 같고 나흘이 지나 것도 같고 그 사이 일들이 주마등 처럼 일렁 거린다. 먼지를 털고난 선생이 괴로운 표정으로 번갈아가며 눈을 찡긋거렸다. 흐릿한 호롱불을 벗하여 백발이 성성한 이날 이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은 야삼경 독서였으니 눈이 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리라.

"가만 있거라 오늘이 며칠째이던고 ?"

머틀거리는 눈을 껌뻑이며 선생이 혼자말 처럼 물었다,

말고삐를 부여잡은 떡쇠란 놈 제 주인의 말은 들어도 못들었다는 듯 꾸역꾸역 앞만 보고 걸을 뿐이다. 헐렁하게 울러맨 바랑이며 얼렁뚱땅 꿰어찬 짚신 켤레가 엉성하기 그만이다. 놈의 이것저것 행세를 볼랴치면 다독인 데라곤 어느 한군데도 없는게 제 주인을 두려워 하는 구석이라고는 발바닥의 티눈 만큼도 없이 보인다. 하긴 저라고 어찌 선생의 후덕한 인심을 모를리 있겠는가. 또한 이방이니 호방이니 하는 직속 관리들이나 고을 원님이라면 설설길까 까마득히 저 아래 있는 개인비서 비스름한 가복의 처지인 담에야 말동무가 되면 되었지 '이놈 저놈' 호령할 마당은 아닌 것이다.

"허어 어찌 과객이 재를 넘은 지도 하루가 지났지만"

그제사 주인을 흘끔 쳐다보며 쌈지끈을 푸는 떡쇠였다. 제대로 정성들여 묶은 끄나풀이라고는 그 하나뿐이었다. 쌈지 속에서 콩알만한 돌이 떡쇠의 손바닥에 쏟아졌다. 손바닥에 널려진 돌맹이를 몫몫이 갈라놓은 떡쇠가 보란 듯이 히죽 웃어 보였다.

"영감마님 오늘이 사흘째지유 하얀 차돌 둘에 까만 먹돌이 셋하고 마님 길 나선 지는 헌게 닷새째구먼유"

선생이 눈물을 찔끔 짜며 껄껄 웃었다.

"이놈아 그 오석은 어재 텃골(기동리)서도 세 개라고 하지 않았더냐"

엿가락 처럼 길게 늘어진 한여름 타박길을 이고을 수령인 군수와 젊은 관노가 걷고 있었다. 단양군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그곳은 눈병에도 효험이 특별하다는 약수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 내내 위쪽으로만 치닫고 있었다. 지칠대로 지친 퇴계 선생이 느티나무 아래 짐을 풀었다. 나귀를 한쪽에 맨 떡쇠 놈이 밭 가생이로 뛰었다. 콩 이파리가 바람을 맞아 물결처럼 일렁였다. 젊은 농부에게 무슨 말인가를 나눈 녀석이 춤이라도 추듯 잰걸음으로 뛰어왔다.

"영감마님 다 왔구먼유. 휴우~ 조오기 보이는 저 잿말랭이만 넘으면 청풍땅 이란데유"

"허험

<허다면 예가 단양군 상단이란 말이더냐??>

"그러하옵니다 마님!"

"과연 먼골(遠谷) 이로고 하다면 약수는 어디 있다더냐?"

"저기 오른쪽으로 붙은 둔덕만 넘으면 나온답니다유"

"그래 가자꾸나 허고보면 이만한 크기의 단양 땅이거늘 뉘가 감히 단양을 작다고 하겠는가 거기에다 천하 명승의 절이 다 모였고 순박하기 이를데 없는 민심이 아니던가. 조선 제일의 경치가 예말고 또 어디던고!"

바로 이곳이 적성면의 또한 단양군의 최북단 상원곡과 하원곡의 이름이 붙여진 유래다. 원래가 상원곡과 하원곡은 한 동네 였는데 동네가 커지면서 윗동네를 상원곡리 아랫동네를 하원곡이라 하였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원곡은 멀다는 뜻의 원(遠)이 아니라 약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란 뜻의 원(源)이란 글자가 쓰여 졌다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도 상원곡 일대를 '며느실' 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한자의 바른 차용은 遠谷이 될 것이다.
 
등록일 2007년 12월 27일 10시 43분 32초
수정일 2014년 10월 5일 21시 8분 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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