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흥사의 500나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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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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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면 황정리 대흥사는 202칸의 큰절이었다. 일본군과 의병이 교전하는 과정에서 애매하게 대흥사가 불타고 말았다. 승려가 100여명이 있었고, 부처님의 불제자가 500나한이 모셔진 대불당으로 현재의 부지도 6,000여평이 넘고 사지 근처에 많은 기와 조각과 주초석, 석축이 눈에 띄이는 곳이다. 주 지스님 인솔로 8일만에 단양 대흥사에 도착하여 보니 202칸 기와집은 폐허되고 나한전도 파괴되고 500나한이 흙속에 있어 손질하여 세우고 497명에게 한 분씩 등에 지게 하니 3구가 남아 다시 올 수는 없어 주지스님이 힘이 센 3명에게 두분의 나한상을 지게하고 주지스님의 구명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치니 천지가 진동했다. 10 일만에 유점사에 도착하여 라한전에 모시고 예불을 마쳤다. 이튿날 라한전에 가보니 3구가 보이지 않아 모두 모여 확인하였으나 497구 밖에 없어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공중에서 큰소리로 "대중들이여 들으라. 500나한중 어느 한 분도 득도를 못한 분이 있겠는가! 그러하다면 어떠한 분은 한사람씩 편안하게 등에 업혀 오는데 나는 두분씩 한사람 등에 업혀오니 도중에서 불편함이 말이 아니었느니라. 이것은 대중들의 무성의로 이 같은 꼴이 된 셈이요. 그래서 나는 이러한 불편스러운 일을 더 이상 참지 못하여 유점사를 떠났소. 그러니 더 이상 찾지 말고 그대로 두시오"한다. 모여있던 주지스님이하 여러 스님이 "황공하옵니다."를 외치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사죄하였으나 세분의 나한은 영영 금강산 유정사로 돌아오지 아니했다 한다. 단 양군 단성면 상방리에서 출생하신 하동규(?∼1965)대선사는 법명이 동산이다. 서울의전 재학중 세속을 버리고 금강산에 입산하여 불도에 전념 10년만에 깨달음이 있어 큰 사찰의 조실에만 모셔져서 계시다가 대한불교 조계종 3대 종정을 역임하시고 부산 범어사에서 대선사로 있었다. 아쉬운 점은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때 단양에서 모셔다 500나한이 497인지를 확인하지 못함이 단양인의 책임이 아니었던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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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7년 12월 26일 19시 2분 48초 |
수정일 | 2010년 8월 4일 14시 55분 39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