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이 있는 살기좋은 단양
제목 | 북하리 마을 자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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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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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하리는 옛 단양의 중심지로 아랫뒷들 하북평이라 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적산현 적성현이였고 고려 공민왕대는 단산부였으며 현종 9년(1018년)에는 원주목에 속했고 충주진영에 조선 태종 13년(1413년) 때는 읍내면에 일부였으며 1914년 군면 폐합때에 읍내면과 서면을 합할 때 봉화면 이였고 1917년 단양면으로 개칭됐다. 1985년 충주댐 수몰로 인하여 단양군청과 단양읍이 이전함으로 673호가 217호만 남아 단양읍 구단양 출장소에 속했으나 1990. 9. 수해로 40여가구가 충주댐 수위조작으로 147m까지 침수로 이주 두악공원이 조성되었고 1992. 1. 1. 구단양 출장소가 단성면으로 승격되어 단성면 북하리 176호가 살고 있다. 북하리는 옛부터 나라의 관방인 죽령의 길목에 위치하여 삼국의 소용돌이를 선조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옛부터 산 좋고 물 좋았고 땅이 기름져 선비 유생들이 강당소와 느티나무 아래서 500년을 살았으며 우리마을의 운계 신맹경은 제천현감에 재직시 겨울에 산딸기를 구하고 단지하여 모친병을 회생시키자 34대단양군수 서인원의 보고로 선조왕이 1593년에 명족하였고 송시열이 이 장려문을 써 보낸바 있다. 두악산의 정기를 담북 받은 마들, 뒷들, 샛들이 단양마늘 원산지가 되었고 강당소 벼락바위 효자각 도계서원 선악의 응징 사포로다! 단양교 죽령천 맑은물과 두악산 화기는 조화를 이루어 성산에 멈추었고 두악이 문필이라 문인자리 만들었다. 뒷들 벗은 황소형극 삼재팔난 막아 내어 반만년의 겨레의 젖줄 죽령천이 이어주니 경경선, 중앙선, 5·36번 국도 생활터전 다지누나 나와 내가 힘을 합해 어머님의 품안 같은 내고향 옛북평 마실을 우리 한번 자랑스럽게 가꾸어 봅시다. 1994.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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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7년 12월 26일 18시 53분 22초 |
수정일 | 2010년 8월 4일 14시 27분 3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