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이 있는 살기좋은 단양
제목 | 정선서 떠내려온 도담삼봉과 세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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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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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삼봉과 세금, 정도전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있다. 정선에서 떠내려 왔다는 것은 정선아리랑이 흘러 내려 오면서 뱃길 문화로 전파되어서 매포민요와 묘한 점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선의 향사 내고장 전통가꾸기에는 정선군의 삼봉산이 떠내려 가서 생긴 것이 도담삼봉이다. 정성읍 봉양 7리 속칭 적거리(덕거리)마을 현재는 초가가 없고 상수도 수원지와 주택개량지로 변한 이지역에 있었다 한다. 또한 대홍수 때는 홍수에 밀려 떠내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홍수가 줄어 들자 마을 사람들은 명산이며 주민의 안식처였던 삼봉을 찾아오도록 하였다. 보름째 되던날 현 단양 매포에서 동이틀무렵 삼봉을 확인하니 큰산이 흙은 다 씻기고 돌만이 남았으니 산세로 보아 삼봉이 틀림이없다고 확인했다. 충청북도 전설지, 단양군지, 신단양건설지에는 고려중엽 큰 장마때 강원도에서 떠내려와 가지 못하고 강 가운데 정착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둘 다 강원도에서 떠내려온 것은 같다.하나는 고려중엽 하나는 조선선조로 확실한 연대를 가지고 있다. 둘다 강원도 정선땅의 것이므로 단양 매포 사람들은 서로가 명산이고 떠내려온 것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되어 매년 가을세금을 강원도 정선에 내야 했다. 몇 십년을 강원도 세리에게 세금을 아무 말없이 바쳤으나 마을 사람들이 아무리 명산이라도 세금 정선에 낸다는 것은 억울하다며 대책을 논의하게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묘안이 없어 다음날로 회의를 미루고 다시 세금을 억울하게 내야하는데 대한 불평만 하면서 폐회하는 과정에서 오늘의 집회내용과 세금 이야기를 듣고 삼봉정도전이 그것은 어린 저에게 맡겨 주시면 내일 강원도 정선군 세리와 내가 결정할 터이니 꼭 불러 달라하여 회의는 완전 파하고 돌아갔다. 다음날 마을에 강원도에서 세금을 받으러 온 세리가 세금을 내라고 독촉한다. 이때 육칠세의 어린소년이 어른틈에서 나와서 “어제 우리 마을에서 회의를 했는데 올해 부터는 지세를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자 마을 주민과 세리가 놀라서 고함을 지른다. 주민들도 조용히하고 어린 소년과 세리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을 때 강원도 세리 책임자가 “그러면 세금을내지 않는 이유를 대어 보라고 하자 "예, 삼봉이 강원도 정선에서 떠내려와 이곳에 머문것은 이곳에 오라고 한것도 하니요 제멋대로 온 것이니 이곳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고 삼봉이 그렇게 소중한 것이면 강원도 정선으로 도로 가져 가면 될것이 아니요. 또 강원도로 가져가면 번거롭게 세금 받으러 올 필요도 없고 도리에도 맞을것 입니다. 또 저것이 있어 물이 차이고 돌아서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으니 우리가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 했더니 강원도 세리가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갔고 그후 부터는 이동네 사람들은 삼봉으로 인해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옛 삼봉자리 강원도에는 봉양국민학교와 정선역이 자리잡고 있어 상전벽해라 할수 있다. 옛날 어느 선비가 장가를 들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셋을 낳았다. 그래서 선비는 아들을 얻기 위해서 첩을 두게 되었는데 첩은 아들을 잉태했고, 선비와 첩 이 너무나 가깝게 지내자 본부인은 시샘이 나서 딸을 품에 안고 남쪽으로 돌아서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체보자 주 : "삼봉산이 떠내려가 생긴 도담삼봉" 정선군 전통가꾸기에는 정선읍 봉양 7리 속칭 적거리(원명 : 덕거리)마을이었다. 삼봉산 중턱에는 향교가 있었고 산새소리와 절벽아래 조양강이 굽이 쳐 흘러, 보는 이마다 경치에 감탄했는데 임진왜란이 있은지 13년후인 을사년 홍수때 하루 밤사이 떠내려 갔다고 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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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7년 12월 26일 18시 43분 14초 |
수정일 | 2010년 8월 4일 14시 2분 11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