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암마을 견문기
- “장암리 마을의 비극을 아십니까?”책자를 들고
단양 전지역에 배포된“장암리 마을의 비극을 아십니까?”라는 책자를 보고 사실 찜찜했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문구와 사진들이 정말 이럴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 여러 지인들의 빗발치는 전화도 한몫 했었다.“정말 이 정도라면 반대해야지요”그래서 매포의 몇몇 단체가 견학을 간다기에 동승하기로 했다.
그래 내 눈으로 보자. 그리고 정말 책자의 내용이 맞는 지 확인해 보자. 동승했던 어느 분의 말처럼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마음이 답답하다. 임진왜란 전 일본의 침략의도를 알아보기 위해 선조 23년 조선에서 보냈던 통신사의 마음이랄까? 나는 무엇을 볼 것인가?
장항읍을 거쳐 장암마을을 들렀다. 책자에서 보여준 데로 코스모스도 못 크는 암의 백화점... 작년까지 엘에스니코가 제련소를 가동하였고 굴뚝에서 아직도 오염물질이 쏟아져 나온다는 그 곳, 70년대 가옥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해수욕장은 개미새끼 한 마리 없다는 그 곳
나는 먼저 급 실망했다. 습한 바다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대와는 사뭇 다른 낙후된 모습들. 그리고 보니 관광지가 아닌 바닷가 삶의 현장을 둘러 보는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닌가?
낙후된 장항읍은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인근 군산시로 하구둑이 생기면서 군산으로 인구가 집중되어 그렇단다. 그 전에는 군산을 가려면 금강을 한 참 돌아 3시간 정도 우회하였단다. 하구둑이 생기면서 상권이 군산으로 옳겨 간 거란다. 군데군데 빈 가게가 보였다. 우리 지역 매포와 비슷한 형국이다. 옛 영광을 말해주는 것은 군데군데 산재한 관공서다.
장항제련소를 들렀다. 돌산에 꽂힌 거대한 굴뚝! 책자에서 보았던 오염의 상징.
책자내용은 이렇다.
“장암리는 1936년부터 바닷가를 끼고 자리잡은 장항제련소가 있었던 마을로 70년대부터 작년까지 엘에스니꼬가 제련소를 가동하였던 곳입니다.”
그러나 회사 관계자의 설명은 그게 아니다. 이미 1989년 용광로를 폐쇄하여 제련소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더불어 공장주변 장암리 토양오염은 일제 강점기와 국영기업에 의해 대부분 발생하였다 한다. 그들의 기업운영 기간은 15%에 지나지 않으며 현 공장장은 억울하게도 토양오염의 주범이 된 지금이 제일 어렵노라고 토로한다. 그 반증으로 국가는 대부분 그 책임을 인정하고 오염부지 매입, 정화작업, 보상 등 종합대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또 우리 나라는 1991년에 대기 및 수질환경 보전법이 제정되었고 1995년 토양환경보전법이 제정되었는데도 구 시대의 잣대로 책자에서는 의도적으로 엘에스니코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벌써 이 책자가 이곳에까지 전해진 모양이다. 장암리 한 주민이 책자를들고 있다. 그들은 화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장암리 한 주민은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 이런 말을 했다.“단양 문제는 단양에서 푸십시오, 왜 여기와서 이러십니까? 전국적으로 서천쌀이 얼마나 유명한지 아십니까?”그들은 이미지 추락을 우려하고 있었고 분명 우리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해가 갔다. 거의 모든 일행들이 그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이 급하게 사과를 했다.
장항제련소 굴뚝 밑 돌산에 도착했다. 현지 주민 몇분이 동행했다. 생각보다 제련소 굴뚝이 위치해 있는 돌산이 급경사였다. 몇분의 만류로 굴뚝에 올라보지는 못했다.
책자 내용은 이렇다.
“공장의 굴뚝입니다. 높이가 무려 90m 과연 이 높은 굴뚝에서 무엇들이 나왔을까요?”
“가동이 중지되었지만 빗물이 흘러가면서 오염물질들이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독한지 시멘트를 녹이다 못해 철근이 다 들어나 있습니다.”
회사 관계자와 주민은 이 굴뚝이 1989년 용광로를 폐쇄하면서 용도폐기된 굴뚝이라고 했다. 가동이 중단된 지 거의 20여년이 되었다. 이 회사에서 파괴하려고 하였지만 지자체가 국가 문화재 지정과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가 보류된 시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책자에서 보여준 아직도 오염물질이 새어 나온다는 곳은 빗물이 흘러나오는 굴뚝 배수구였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황(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과 반응한 빗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녹물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낙수물도 댓돌을 뚫는다고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한 시설인데 너무 말짱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책자의 내용은 벌써 몇십년 지난 일을 현실처럼 믿게 하고 있다. 두렵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은 근대화의 상징이지 오염의 상징이 아닙니다.
장항제련소의 비교적 높은 곳에서 장암리를 바라보았다. 방풍림이 제법 근사하게 둘러진 아늑한 곳이었다.
책자 내용은 이랬다.
“애써 심은 코스모스 조차 제대로 자라지도 못해 풀밭처럼 보이는 논과 밭. 코스모스 밭, 코스모스 밭, 코스모스 밭, 코스모스 밭”
회사와 주민들은 이 일대의 오염에 대하여는 공감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시설없이 원재료가 방치되어 있었고 운송되었다 한다. 페수 관리도 엉망이었고 근처에 석광산도 있다 한다. 이 곳 어르신들은 변변한 보호장구 없이 등이 휘도록 일을 하였을 것이다. 이곳 어르신들은 일제수탈의 피해자요, 근대화의 피해자다.
이곳에 국가에서는 경관작물을 심게 하고 보상을 해주고 있다. 장암리 약 1.4km일대이다. 그러나 책자의 내용대로 코스모스조차 못자랄 정도는 아니란다. 주민들 말로는 배수가 잘되지 않아 코스모스 씨의 발아율이 낫고 거의 코스모스를 관리하지 않아서라는 거다. 형식적이라는 이야기다. 왜 코스모스냐고 물으니 토양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다. 너무도 교묘하다. 코스모스조차 자라지 못하는 밭이라니.
공장을 빠져나와 책자에서 소개된 공장 근처 낙후된 마을을 들렀다. 이건 확실하겠지. 70년대에 정지된 것 같은 이 사진은 확실하겠지. 낙후된 마을...
책자의 내용은 이렇다.
“주민들의 삶과 마을이 발전한다구요? 이 마을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게 기업유치로 발전되었다는 마을인가요?”
그런데 이번에도 뒤통수다. 책자에 소개된 사진은 회사소유의 땅이란다. 가옥 주인이 권리를 거의 행사하지 못하는 곳이었단다. 신축, 증축할 수 없는 곳... 이럴 수가 있나. 혼란이 왔다.
다음에 들린 곳이 책자에서 사람하나 없는 해수욕장이라고 소개된 곳이다.
책자 내용은 이렇다.
“한 여름철 피서객없는 해수욕장! 바닷가라는 데 이 일대 횟집하나 없고 백숙집 몇 집만 파리 날리고 있는 이상한 마을! 대기업이라던 공해공장 때문에!”
주변에 몇 개의 백숙집이 보였다. 책자에서 많이 본 것이어서 친근하다. 그리고 사람하나 없다는 해수욕장엘 갔다. 솔직히 이건 처음부터 아니다 싶었다. 왜냐하면 모래사장이 적고 뻘이 멀리까지 뻗어 있는 해수욕장이 어디 있는가? 아니나 다를까? 정말 개미새끼 하나 없는 곳에 어선 몇이 뻘쭘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주민들 말로는 이곳은 해수욕장은 확실히 아니란다. 산림욕이나 모래찜질 행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백숙집이 유명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근처에 횟집은 없었다.
이곳이 해수욕장이라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다. 당연히 피서객이 없을 수 밖에.
내가 장항서 본 것은 이렇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소박하게 듣고 본 내용이다. 가지고 간 책자와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그 책자는 의도적으로 환경오염의 실체를 엘에스니코에 맞추고 있으며 약간의 진실에 과장된 거짓말을 버무려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선동적이고 자극적 홍보물이다.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그러나 단 한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장암리 주민들은 말했다. 자신들의 몰락은 환경오염이 아니라 과거에 집착해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지 못한 반기업적인 정서가 원인이었노라고. 우리는 장암리의 몰락을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제 피는 곳이 어디든 코스모스를 똑바로 보지 못할 것 같다. 그들에게 부끄럽다. 많이 많이 부끄럽다. 장암리 사람들...
매포참여주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