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군 가곡면 여천리의 삼태산 남쪽 중턱(해발 312m)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유적이다. 구낭굴은 동굴유적 으로는 드물게 파괴 ,교란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찾아졌다. 동굴은 길이 140여m, 입구너비 5.5m이며 굴 안 7m 지점에 넓은 광장(6×10m)이 있는데, 이곳이 구낭굴 사람들의 주된 생활공간(main hall)으로 이용되었다.
충북대학교 박물관(1~3차 발굴 : 1986ㆍ1988ㆍ1998)과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4~6차 발굴 : 2007ㆍ2011ㆍ2013)이 6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한 결과, 지층은 약 5m두께에 9층으로 구분되며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이 중 3층(제2퇴적층)이 구낭굴의 중심이 되는 생활문화층이다. 이 층에서 사람뼈와 석기, 뼈연모 및 호랑이, 코뿔이, 곰, 짧은꼬리원숭이, 사슴, 쥐 등 24종의 동물화석이 출토되었다. 여기에서 나 온 사람뼈는 발목뼈 1점, 발등뼈1점, 발가락뼈 3점만이 찾아져 체질적 특징을 밝히기 어려우나 형태와 특징으로 보면 남자 어른의 것으로 판단된다.
석기는 석회암 낙반석과 종류석을 돌감으로 이용하여 간단한 떼기를 베풀어 쓴 것에 비하여, 뼈연모는 긴 대롱뼈에서 떼어 낸 격지에 잔소질을 베풀어 연모로 만들었고, 쓰는 과정에서 불규칙하게 떨어져 나간 작은 격지자국이 관찰되고 있다. 동물뼈의 분석결과 구낭굴 사람들은 봄ㆍ가을ㆍ겨울철에 사냥활동을 하여 주로 어린사슴을 선택적으로 잡았으며, 잡은 뒤 굴 안에서 도살행위를 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구낭굴에 발달한 3개의 석회마루층을 측정한 결과 아래의 1석회마루층이 98,000년전, 중간의 2석회마루층이 80,000년전, 맨위의 3석회마루층이 12,500년전의 연대값을 얻었으며, 구낭굴에 퇴적물이 최초로 쌓이기 시작한 시기는 약20만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구낭굴 유적은 계절적으로 사냥활동을 위하여 이용하던 사냥용 주거유적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동굴 생활 문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