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시대 개관

마한시대 개관

마한시대 馬韓時代(기원 전후 ~ 300년경)는 삼국시대의 원초적인 단계로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국가 단계로 성장하고 있었고, 남부 지역에서는 백제와 신라, 가야의 모태인 삼한(三韓)이 있던 시기이다. 또한 평양 일대에 설치된 낙랑군은 중국 문화가 유입되는 통로가 되었다.
이 시대에는 철기 생산이 본격화되어 철기가 일상도구로 널리 보급, 사용되었으며, 중국이나 왜ㆍ북방과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이와 함께 새로운 토기 제작 기술이 도입되어 굴가마에서 토기를 굽기 시작하였고, 목기와 칠기 등의 생활용품 제작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수양개 Ⅱ지구

수양개Ⅱ지구전경 / 삼지창,쇠도끼 / 시루 / 뚜껑있는 단지 / 토기단지 / 돌화살촉 / 옥장신구수양개Ⅱ지구는 마한시대의 생활유적으로 강안을 따라 약 5만 여 평에 유적이 형성되었으며, 유적 일부분을 조사한 결과 26기의 집터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중원지역에 대한 시기의 유적 중 최대규모의 생활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집터는 높은 밀집도를 보이고, 모두 불탄집인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집의 기본구조를 이루는 기둥ㆍ판자ㆍ서까래ㆍ갈대와 불먹은 흙덩이 등이 잘 남아 있어 집의 구조 복원이 가능 하여졌다. 또한 불땐자리는 진흙만 이용하거나, 진흙+강자갈로 만든 2가지 유형이 있는데, 모두 집의 중앙에서 북벽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만들어졌다. 집터에서는 불탄 쌀/보리/밀/조/콩 등 많은 양의 낟알과 집돼지뼈 등이 출토되어, 다양한 유형의 연모와 함께 당시의 식생활과 농경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생활유적

마한시대의 생활유적으로는 집터와 조개더미가 있다. 집터는 대부분 낮은 구릉이나 강변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평면의 긴 네모꼴의 움집이 많으며 내부에는 편평한 돌을 직경 1m 가량의 타원형으로 편 후 그 위에 점토를 덮고 북쪽에 큰 판석을 세운 화덕자리가 있다. 중부 지역에서는 출입시설이 있는 ‘呂(여)’자형 또는 ‘凸(철)’자형의 집터가 조사되었으며, 남부 지역에서 조사된 집터는 별도의 출입시설이 확인되지 않은 원형이나 방형이다.
조개더미는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가비가 쌓여 이루어진 쓰레기더미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뼈연모, 꾸미개, 철기, 석기 등의 도구들뿐만 아니라 동물뼈, 조가비 등의 자연 유물도 풍부하게 출토되어 당시의 환경과 생활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무덤

마한시대의 무덤(墓制)은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고구려 및 낙랑이 위치한 한반도 북쪽에는 돌무지무덤, 덧널무덤, 벽돌무덤 등이 채택되었고, 남쪽에는 초기철기시대로부터 계승ㆍ발전된 널무덤, 독무덤과 새로이 덧널무덤, 주구묘(周溝墓) 등이 만들어졌다.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의 환런(桓仁)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냇돌을 네모지게 깔고 그 위에 널을 놓은 후 다시 돌을 쌓은 형식이다. 한강(漢江)과 임진강 유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남부지역에서는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이 주로 사용되었다. 널무덤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무덤내부에는 여러 종류의 토기와 철제 무기류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중국 거울(漢鏡), 세발솥(靑銅鼎), 투겁창(廣形銅鉾) 등 외국 유물이 출토되기도 한다. 덧널무덤은 마한시대 후기에 나타나 점차 발전하면서 삼국시대 전반기까지 널리 유행한 묘제이다. 덧널무덤은 주로 구릉 말단부의 대지 위에 만들어지며 널무덤에 비해 토기나 철기 등 껴묻은 유물의 수량이 많아진다.
중서부지역에 대부분 편중되어 있는 주구묘(널무덤 외곽에 도랑을 돌리는 무덤)와 독널무덤(항아리를 맞물린 무덤)형식의 묘제도 사용되었다.